그럴듯한 아이디어의 함정
소변기에 붙여놓은 파리 스티커는 정말 효과적일까요?
좀 큰 건물 화장실에 가면 남성용 소변기에 파리 그림 스티커가 붙어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암스테르담의 스키폴(Schiphol) 공항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파리 그림을 그려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을 80% 줄일 수 있었다(Thaler & Sunstein(2008))는 얘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넛지에 대해 얘기하면 많이 소개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디자인에서는 어포던스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이용해 보면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소변이 튀지 않기 위해서는 소변기에 가까이 붙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가까이 가면 소변기의 윗부분에 시야가 가려져서 보이지 않거든요. 비슷한 생각을 한 분이 찍은 사진이 있네요.
이거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요? 위의 글을 퍼뜨린 네덜란드인과 넛지 저자가 사기꾼인 걸까요? 아마도 변기 모양이 달랐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남성용 소변기가 아닌, 뒤샹의 샘에서 사용한 것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아이디어에 반해 적용해 보려다 발생한 오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스티커를 붙이자고 한 결정권자와 실제로 붙인 실무자가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높겠네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마법 같은 해결책이 존재하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는 것을 마음에 항상 품고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분명히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나사에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무중력에서도 쓸 수 있는 펜 개발하는 동안 소련 우주비행사는 연필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죠.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진짜라고 하더라도 연필의 분진으로 발생하는 정밀기기 고장 위험과 현장 인원의 건강 문제를 놓치고(또는 무시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핀을 합성하려고 엄청난 지원금과 인력을 들이는 동안 누군가는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지요. 창의력은 없고 지원금만 타 먹는 교수에게 ‘혈세’가 낭비된다는 사이다 썰로 소비되기 쉽지만 산업적으로 응용 가능하도록 대량 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겠지요. (그래핀 실용화가 어려운 이유,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