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는 파리아 신부가 될 수 있는가

암굴왕을 만드는 방법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교육 분야도 ChatGPT(를 대표로 하는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효과와 안정성에 대해서는 문제를 안고 있으나 이미 많은 학생들이 에세이 숙제에 활용할 만큼 모범적인 에세이를 작성해 내는 능력은 검증되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프 성채에 갇혀있지만 엄청난 양의 검증된 장서를 기억하고 특유의 지혜로 에드몽 당테스를 교육시키는 파리아 신부는, 통 속에 갇혀 특정 시점 이전의 텍스트만을 기억하고 있는 ChatGPT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hatGPT도 뛰어난 지성을 가진 개인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지능은 무엇인가,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지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ChatGPT를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지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라고 정의하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질문을 시뮬레이션하기

지성을 가진 인간처럼 말할 수 있는 AI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제기할 법한 질문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학생은 상대가 움직인다는 것을 잊고 체스말을 움직이는 사람처럼 자신의 논리만을 가지고 생각을 전개해 나가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가설적 공감(hypothetical sympathy)‘을 한 상태에서 듣고 다시 비판적 관점으로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ChatGPT에게 다른 관점의 생각이나, 타인이 가질법한 질문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책과 대화하기

책이라는 인터페이스는 종이의 물성, 글자와 언어의 구조에 최적화된 형태입니다.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 매체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식의 전달 과정에서 흔히 활용되지만 책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그리고 책의 목차 순서대로 교육하는 게 항상 옳은 일일까요? 생성형 AI는 인터페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에드몽 당테스가 책을 사용해 교육받지 않았듯이 AI가 학생 개개인의 파리아 신부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교과에서 단원을 순서대로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식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고려해 많은 석학들이 만들어낸 커리큘럼일 테지만 누구에게나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의 현재 상황에 가장 밀접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청중이 한정적일수록 이야기는 매니악해지는 대신, 더욱 깊은 재미에 도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청중 자신이 이야기 당사자인 이야기야 말로, 그 사람에게는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 세계 제일의 이야기꾼 <매치스틱 트웬티>

학생의 모든 경험이 교과와 연결될 수 없고, 학습의 효율 문제가 있지만 병행한다면 경험과 연결고리가 생긴 지식은 그 학생의 단단한 지성의 기초를 다져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없다

생성형 AI를 활용한다고 하면 흔히 문제를 쉽게 만들어내거나 채점을 대신해 주는 정도가 먼저 떠올리지만 활용범위를 너무 지금의 시스템에 맞춰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프 성채의 감옥에서 최고의 교육을 했던 (윤리적인 면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파리아 신부를 떠올렸으면 합니다.

*이제 AI가 잘못된 윤리를 가르칠 것이라는 것은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비윤리적인 발화를 하는 것이 AI와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이라고 보일 만큼요.